읽을거리

어느관리의 죽음 - 체호프

여진석 2015. 3. 6. 14:37
728x90

어느관리의 죽음 - 체호프

어느 멋진 저녁날, 그에 못지 않게 멋진 회계원 이반 드미트리치 체르뱌코프는 관람석의 두번째 줄에 앉아서 오페라안경으로 '꼬르네빌의 종'을 보고 있었다.  공연을 보면서 그는 마치 기쁨의 절정에 다다른 기분이었다. 그때 갑자기... - 언제나 이야기에서는 이 '그때 갑자기'란 말이 자주 나오는데 작가들도 그럴 법한 것이,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갑작스런 일들로 가득차 있지 않은가! -  그가 얼굴을 찡그리고 눈을 두리번거리더니 숨을 멈추었다... 그는 오페라안경에서 눈을 떼고 몸을 숙였다. 그리곤....에푸치!!!  마치 보란듯이 재채기를 해 버린 것이다.  누구도,  어디에서도 재채기란 것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농부도 경찰서장도, 때로는 심지어 국장님도 재채기를 한다.  누구나 재채기를 한다.  체르뱌코프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친 다음 예절바른 사람답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재채기로 다른 사람한테 폐가 된 건 아닐까?  한데 저런, 부끄러운 일이다. 그는 앞의 첫번째 줄에 앉아 있던 노인이 자신의 대머리와 목을 장갑으로 열심히 닦으며 뭐라 중얼거리는 것을 보았다.  체르뱌코프는 그 노인이 교통부에 근무하는 브리잘로프 장군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저분에게 침이 튀었다!>

체르뱌코프는 생각했다.

<내 직속상관은 아니지만, 그래도 불편하게 됐어. 사과해야 해>

체르뱌코프는 헛기침을 하고 나서 앞으로 몸을 숙이고 장군의 귀에다 속삭였다.

"실례합니다 각하, 제가 침을 튀겼습니다....제가 실수로..."

"괜챦소, 괜챦아.."

"용서하십쇼, 각하, 제가 했습니다...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아, 앉아요 제발! 좀 들읍시다!"

체르뱌코프는 머쓱해져서 바보같이 웃음을 짓고  다시 공연을 보기 시작했다.  공연을 보고는 있었지만, 더이상 기쁘지 없었다.  불안감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막간의 휴식때에 그는 브리잘로프에게 다가갔다.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그는 마침내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우물쭈물 말했다.

"제가 각하께 침을 튀겼습니다.  각하, 용서하십시요. 저는 그저... 그러려던 것이..."

"아, 진짜로... 나 다 잊었어요, 아직도 그얘기요!"

장군은 그렇게 말하며 참지 못하는 듯이 아랫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잊었다면서 눈에는 서릿발이 서있어.>

체르뱌코프는 그렇게 생각하며 의심스럽게 장군을 곁눈질로 봤다.

<나와 말도 안하려고 해.  내가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재채기는 자연의 순리라고 설명해야 하는데....  안그러면 내가 일부러 침을 튀긴 거라고 생각할 거야.  지금은 그런 생각을 안하더라도 나중에는 그럴지 몰라!>

집에 돌라온 체르뱌코프는 아내에게 자신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보기에 아내는 이 사건을 지나치게 가벼운 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좀 놀랐지만 브라잘로프가 다른 부서 상관인 것을 알고는 안심했다.

"그래도 가서 사과하세요"

그녀는 말했다.

"당신이 사람들 있는 데서 분별을 못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래, 내 말이 그거야! 사과를 했는데도 그 분은 뭔가 이상했어... 한마디 제대로된  말도 안해줬어,  하긴 그건 이야기한 것도 아니지만."

다음날 체르뱌코프는 새 관복을 차려입고 말끔하게 면도한 다음 브리잘로프에게 해명하러 갔다.  장군의 접견실에는 청원자가 많이 있었는데 그들에 둘러싸여 장군과 이미 접견이 시작되고 있었다.  장군은 몇몇 청원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 눈을 들어 체르뱌코프를 보았다.

"어제 아르카지 극장에서....기억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만, 각하, ..."

"제가 재채기를 했습니다만..., 그래서 본의 아니게 침을 튀겼습니다... 죄송하게 되..."

"무슨 쓸데없는 소리...무슨 일이요, 당신은 무슨 일로 온거요!"

그리곤 장군은 다음 청원자에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은거야! - 라고 생각하며 체르뱌코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화를 내고 있어,... 안돼, 이렇게 내버려둬선 안돼.. 해명을 해야해...>

그때 장군은 마지막 청원자와 이야기를 끝내고 안쪽 방으로 향하려 할때 체르뱌코프는 그를 좇아가서 중얼거렸다.

"각하! 제가 이렇게 찾아 뵈어 각하께 폐를 끼친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참회드리고자 합니다! 본의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요!"

장군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내 저었다.

"뭐야, 당신 나를 조롱하는거야!  뭔가!"

그리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무슨 조롱이라는거지?>

체르뱌코프는 생각했다.

<놀리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는데! 장군님은 잘못알고 계시는군. 그렇다면 좋아, 이 거만한 인물한테 사과하지 않겠어! 집어치우자! 찾아갈 필요없이 편지를 쓰는거야! 신께 맹세코 안찾아갈테다!>

체르뱌코프는 집으로 돌아오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편지는 쓸 수 없었다.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 봤지만 도대체 편지에 어떻게 써야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결국은 다음날 장군에게 또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각하, 저는 어제 와서 폐를 끼친 사람입니다만"

장군이 그를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자 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건 각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놀리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다만 재채기를 하고 침을 튀긴 것에 대해서 사과를 드리려던 것이었지, 조롱같은 것을 하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감히 각하를 조롱하겠습니까?  만약에 제가 웃는다면 그건 고매하신 어른신 인격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지, 어떤...."

"꺼져!!"

갑자기 장군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부들부들 떨며 소리를 지른 것이다.

"뭐라고요?"

체르뱌코프는 두려움에 질려서 속삭이듯 물었다.

"꺼지라고!!"

장군은 발을 구르며 되풀이했다.

체르뱌코프의 뱃속에서 무엇인가가 터져나온 듯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문으로 뒷걸음 쳤고 거리로 나와서 터벅이며 걸었다.  기계같이 집으로 돌아온 그는 관복을 벗지도 않고 침대로 누워서...그리곤... 죽어버렸다.

'읽을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대들은 모두 좀비   (0) 2018.01.17
최윤욱의 아날로그 오디오 가이드  (0) 2017.07.23
거위의 간  (0) 2014.10.23
어떤 내기 - 안톤 체홈   (0) 2014.09.16
증거   (0) 2013.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