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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내기 - 안톤 체홈

여진석 2014. 9. 1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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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내기- 안톤 체홉 (1889)

I.

깊은 가을밤이었다. 한 늙은 은행가가 그의 서재에서 천천히 왔다갔다 하며 십 오년 전 어느 가을 저녁에 그가 연 파티에 대해서 회상하고 있었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였고 흥미로운 대화들이 오가고 있었다. 손님들은 여러 주제 중 특히 사형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모인 사람들의 대다수는 언론인이거나 지식인들이었는데 거의 모두 사형제에 대해 반대하며 그와 같은 형벌은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비도덕적이고 기독교 국가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이들은 어느 지역에서든 사형제가 종신형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 모임을 연 은행가가 말했다. 
"나는 사형제도나 종신제를  겪어 본 적은 없으나 선험적으로 판단해 볼 때 종신형보다는 사형이 훨씬 도덕적이고 인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형은 순식간에 사람을 죽이지만 종신형은 천천히 죽입니다. 몇 분 안에 당신의 목숨을 끝내는 것과 수십 년에 걸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빼앗아가는 형벌 중 어느 쪽이 더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 둘 다 비도덕적이죠." 
손님 중 한 사람이 이와 같이 대답했다. " 당신의 삶을 빼앗는다는 점에서는 양쪽 다 목적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신이 아닙니다. 국가는 마음대로 결코 돌이키거나 복구할 수 없는 것을 당신에게서 앗아갈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손님들 중에는 이십 오세정도 된 듯 한 젊은 변호사도 있었다. 그의 의견을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사형 선고와 종신형은 모두 비도덕적이지만 둘 중에서 하나를 꼭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확실히 종신형을 택하겠습니다. 죽는 것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는 게 낫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활발한 토론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지금보다 훨씬 젊고 기분파였던 그 은행가는 갑자기 열띤 토론의 분위기에 휩싸여 흥분하게 되어서 주먹으로 테이블로 치며 젊은 변호사에게 외쳤다.
"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오년도 독방에서 버텨낼 수 없다는데 내 재산 이백만 루블을 걸겠습니다."
"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거라면", 젊은이가 말했다. " 그 내기를 받아들이지요. 하지만 저는 오 년이 아니라 십 오년을 감옥에서 지낼 수 있다고 걸겠습니다."
" 십 오년? 좋소!" 은행가는 외쳤다. " 신사 여러분들, 제가 이백만을 걸겠소."
" 동의하오. 당신은 당신의 돈 이백만을 걸고 나는 내 자유를 걸지요" 젊은이가 말했다.

 그래서 이 광적이고 비이성적인 내기가 실현되게 되었다! 당시 수중에는 돈이 넘치고 건방지고 경솔한 성품이었던 은행가는 기쁨에 넘쳐 내기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만족했다. 저녁을 먹을때 그는 젊은 변호사를 비웃었다.

" 젊은이, 아직 시간이 남아 있을 때 현명하게 굴게. 나에게 이백만 정도야 약소한 금액이지만 자네는 자네 인생의 황금 같은 삼사년을 잃어버리게 될 거야. 자넨 그 이상은 버틸 수 없을 테니 삼, 사년이라고 말하는 걸세. 게다가 스스로가 정한 감금상태를 견디는 일은 강제로 감금되는 것보다 훨씬 버티기 어렵다는 것도 잊지 말게나, 이 불쌍한 친구. 어떤 순간이든 마음만 먹으면 포기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 그 자체만으로도 감방에서의 시간이 지옥처럼 느껴질 거네. 자네가 무척 딱하군."

그리고 지금 은행가는 방안을 앞으로 뒤로 걸어 다니며 회고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내기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한 사람이 인생의 십 오년을 허비하고 내가 이백만을 내버리는데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그런 일을 한다고 사형제가 종신형보다 더 좋거나 나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어리석고 아무 의미도 없는 짓이다. 나로서는 철부지의 변덕스러운 짓거리였고 그 젊은이의 입장에서 보면 순전히 돈에 대한 탐욕일 뿐이다."

 은행가는 내기가 이루어진 후 그날 저녁에 이어진 일들을 회고했다. 젊은이는 은행가의 정원에 있는 작은 오두막에서 엄격한 감시 하에 수감생활을 보내도록 결정되었다. 십 오년 동안 젊은이는 오두막의 문지방을 넘어서는 안 되며 사람을 만나거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편지를 받거나 신문을 읽을 수도 없다. 그는 악기나 서적을 소지할 수 있으며 편지를 쓰거나 와인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일이 허용되었다. 계약서에 따르면 젊은이가 외부 세계와 접촉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오로지 그 용도로 오두막에 단 작은 창문 하나이고, 그 창문을 통해서 젊은이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책, 와인, 음악 등등의 물건을 문서로 작성하며 보내고 필요한 물건들을 받는다. 계약서에는 1870년 11월 14일부터 열 두 시부터 1885년 11월 14일 열 두 시까지 정확히 십 오년 간, 아주 상세하게 젊은이가 철저하게 고립된 상태로 수감생활을 시행하게 하는 모든 세부 사항들을 기록해 두었다. 만약 계약서의 조항들을 어기려는 어떠한 작은 시도라도 발생한다면, 그것이 비록 계약 마감에서 이 분 전에 일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은행가는 그에게 이백만 루블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었다.


 수감자가 적어둔 짧은 기록에 의해 따르면, 처음 오년간의 수감생활동안 젊은이는 극심한 고독감과 우울로 괴로워했다. 오두막에서 피아노 소리가 밤낮으로 항상 울려 퍼졌다. 그는 와인과 담배를 거부했다. 그의 노트에는 와인은 욕망을 자극시키며 욕망이란 수감인에게 가장 강력한 적이라고 적혀 있었다. 게다가 좋은 와인을 마시면서 아무도 볼 수 없는 것처럼 비참한 일도 없고, 담배는 방의 공기를 더럽힌다고 적었다. 첫 해에 그가 가져다 달라고 요청한 책들은 대개 가벼운 종류의 책이었다. 복잡한 구성으로 쓰인 연애 소설들, 대중적이고 신나는 이야기책들과 같은 것들이었다.


 이년 째에 접어들자 오두막에서 피아노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제 수감자는 오직 고전 작품들만 요청하였다. 오 년째에 접어들자 음악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고 와인을 요청했다. 창문을 통해 그를 지켜본 사람들에 따르면 그 한 해 동안 수감자는 자주 하품을 하고 화난 어조로 혼잣말을 하며 침대에 누워 먹고 마시는 일 밖에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책을 읽지 않았다. 밤에 가끔 앉아서 몇 시간 동안 무언가를 쓰기도 했으며 아침에는 모두 찢어버리기도 했다. 그가 우는 소리가 한번 이상 들렸다고 했다.


 육 년이 흐르고 반이 지났을 무렵 수감자는 열정적으로 언어, 철학 그리고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하더니 아주 헌신적으로 학문에 빠져들었다. 너무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은행가는 수감자가 주문한 책들을 사다 줄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사 년이 지나자 그의 요청에 의해 구입한 책들이 육백권이나 쌓였다. 이즈음에 은행가는 수감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 친애하는 간수님에게, 나는 이 편지를 여섯 가지 언어로 씁니다. 이 언어들을 아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여주고 읽게 하세요. 그들이 여기서 단 한 가지 실수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부탁하건데 정원에 총 한 발을 쏴 주세요. 총소리를 들으면 제가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모든 시대와 나라의 천재들은 모두 다른 종류의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몸속에는 똑같은 종류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오,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의 이 숭고한 행복감을 당신이 이해할 수만 있다면!" 
수감인의 소망은 충족되었고 은행가는 정원에 두 발의 총을 쏘도록 하였다.

II


  그리고 십 년째에 접어들었을 때 수감자는 책상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신약전서만을 읽었다. 은행가의 생각으로 ,사 년 동안 육백권의 책을 익힌 사람이 이해하기 쉬운 얇은 한 권의 책을 읽는데 거의 일 년 동안을 보낸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신약전서를 마치자 신학과 종교사학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수감 기간의 마지막 두 해 동안 수감자는 아주 무차별적으로 엄청난 양의 책들을 읽었다. 어떤 때는 순수 과학에 열중했고 또 어떤 때는 바이런이나 셰익스피어의 책들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꺼번에 화학책과 의술, 소설과 철학이나 신학에 대한 논문을 동시에 신청하는 노트들도 있었다. 그의 독서는 배가 난파한 바다에서 헤엄치며 정신없이 통나무 하나씩을 번갈아 붙잡으면서 살아남으려는 사람을 연상시켰다.

늙은 은행가는 이 모든 것을 회고하고 난 후 생각했다.
"내일 열 두 시가 되면 그는 자유를 되찾을 것이다. 나는 서약에 따라 그에게 이백만 루블을 지불해야 한다. 돈을 지불하면 나는 끝장이다. 완전히 망할 것이다."

 십 오년 전에는 그의 수백만 재산이 아주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지금은 그도 자신이 빚과 재산 중 어떤 것이 더 많은지 알아보기가 겁이 날 정도였다. 증권 거래소에서의 무모한 투기는 무분별한 추측나  나이가 들고 난 후에도 그가 손 뗄 수 없었던 도박심리로 인해 상당량의 재산의 붕괴를 가져와서, 한때 자부심이 강하고 두려움을 모르던 당당한 백만장자였던 그가 이제는 투자금의 작은 손익 변화에도 벌벌 떠는 평범한 은행가가 되어 버렸다. "빌어먹을 내기." 절망감에 빠져 머리를 움켜쥐고 늙은 은행가는 개탄했다. " 왜 그 인간이 죽지 않은 거지? 그는 이제 사십 살에 불과해. 나한테서 남은 돈을 다 뜯어가서 결혼하고 생을 즐기며 거래소에서 투자를 즐기겠지. 나는 거지처럼 그를 부러워하며 매일같이 그가 내게 똑같은 말을 하는 걸 들어야 할 거야. '나는 당신에게 내 인생의 행복을 빚졌습니다. 제발 제가 도와 드리도록 허락해 주세요.' 안 돼, 그럴 수 없어. 파산과 치욕에서 나를 구원할 유일한 방법은 그가 죽는 거야!" 


 은행가는 새벽 세 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조심스럽게 주위에 귀를 기울였다. 집 안의 모든 사람은 잠이 들었고 집 밖에는 겨울나무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작은 소리도 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는 금고에서 십오 년 동안 열린 적이 없는 그 문을 여는 열쇠를 꺼내고는  코트 차림으로 밖으로 나갔다. 

정원은 캄캄하고 싸늘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축축하고 살을 에는 듯한 겨울바람이 우는 소리를 내며 정원의 나무들을 쉴 새 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은행가는 눈에 힘을 주어 보았지만 땅바닥이나 하얀 동상도, 오두막이나 나무의 형상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오두막이 위치한 곳으로 다가가면서 감시원을 두 번 불러 보았으나 아무 대답도 듣지 못했다. 사나운 날씨를 피하여 부엌이나 온실 어딘가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는 계단과 문을 찾아 어둠 속을 더듬어 가며 오두막의 입구에 이르렀다. 손을 짚으며 작은 복도에 닿자 성냥에 불을 켰다. 쥐새끼 한 마리 없었다. 침구도 없는 누군가의 침대 하나가 있었고 구석에는 어두운 빛깔의 주철 난로가 놓여 있었다. 수감자의 방으로 통하는 문에 붙인 봉인은 한 번도 손대지 않은 그 상태로 있었다.

성냥이 다 떨어지자 늙은 은행가는 떨리는 마음으로 작은 유리창 안을 살펴보았다. 방 안의 촛불이 희미하게 타고 있었고 수감자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등과 머리카락, 손 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책상과 간이 의자들, 그리고 책상 옆 카페트 위에도 책들이 펼쳐져 있었다.

 오 분 정도 흘렀지만 수감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십 오년 동안의 수감 생활은 그에게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는 법을 가르쳤다. 은행가는 손가락으로 창문을 가볍게 두드려 보았지만 남자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은행가는 조심스럽게 문에 붙은 봉인을 떼어내고 열쇠구멍에 열쇠를 밀어 넣었다. 녹슨 열쇠구멍이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문이 삐걱거렸다. 은행가는 즉시 발자국 소리와 놀라는 목소리를 들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삼 분이 지나도록 방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은행가는 안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책상 앞에는 평범한 사람과는 아주 다른 모습의 수감자가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는 여자처럼 구불구불한 긴 머리와 헝클어진 턱수염을 달고 있었고, 마치 뼈 위에 피부가 들러붙은 해골과 같았다. 얼굴빛은 황토빛 기운이 도는 누런색이었고 양 볼은 푹 꺼졌으며 등은 길고 가녀렸다. 또 그의 뒤엉킨 머리를 받치고 있는 손은 너무 얇아 부스러질 것 같아서 바라보기도 겁이 날 정도였다. 머리카락은 벌써 백발로 세고 있었고 야위고 늙어 보이는 그 얼굴을 보면 누구도 그가 아직 사십 세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잠이 들어 있었다. 고개 숙인 그의 머리 앞에는 세밀한 필체로 써 놓은 한 장의 종이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 불쌍한 인간 같으니라고!", 은행가는 생각했다. " 아마도 일확천금에 대한 꿈을 꾸고 있겠지. 그리고 나는 이 반쯤 죽은 것 같은 남자를 들어 침대에 눕히고 베개로 질식시킬 거야. 가장 꼼꼼한 전문가가 봐도 타살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먼저 그가 뭘 적어 놓았는지 읽어보도록 하자"

  은행가는 책상에서 종이를 들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었다.

"내일 열두시가 되면 나는 자유와 다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권리를 되찾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이 방을 떠나 바깥세상의 빛을 보기 전에 당신에게 몇 마디 할 필요가 있을 거 같군요. 지금 나는 완벽하게 온전한 정신으로, 나를 지켜보시는 신 앞에서 당신에게 맹세합니다. 나는 자유와 삶과 건강, 그리고 책 속에서 세상의 좋은 것들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을 경멸합니다. 
십 오년간 나는 세속적인 삶에 대해 열정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비록 땅이나 사람을 직접 느끼지는 못했지만 당신이 준 책들을 통해 나는 향기로운 와인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숲에서 사슴과 멧돼지를 사냥했으며 여인들을 사랑했습니다. 아름다운 시와 천재적인 영감의 마술에 의해 창조된 아름다운 것들은 구름처럼 신비롭고 영묘했으며 밤마다 나를 찾아와서 정신을 자극하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내 귀에 들려주었습니다. 당신이 준 책을 통해 나는 엘보라즈 산맥과 몽블랑 산을 올랐으며 거기서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저녁에는 태양이 황금색과 진홍색으로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산봉우리를 뒤덮는 것을 감상했습니다. 나는 산 정상 에서 내 위로 번개가 구름을 반짝이며 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초록빛 숲, 평야, 강과 호수 마을들을 보았습니다. 나는 사이렌의 노래들을 들었으며 양치기의 굵은 고동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와 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악마들의 날개끝을 만져보았습니다. 당신의 책을 통해서 나는 끝도 없는 절망의 수렁에 빠진 적도 있고 기적을 행하기도 했으며 한 마을을 불태우고 살육했고 새로운 종교를 설파했으며 전 세계를 정복하기도 했습니다. 

당신이 준 책들을 통해 나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고금에 걸쳐 인간들이 만들어낸 불안한 사상들이 내 머리 속에 작은 덩어리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나는 당신들 중 누구보다도 내가 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준 책들을 경멸합니다. 나는 지혜와 이 세상에서 축복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을 경멸합니다. 모두 신기루처럼 쓸데없고 부질없으며 현혹적이며 속임수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당신들은 자부심이 강하고 현명하고 빼어날지는 몰라도 죽음은 당신이 마치 마루 밑에 구멍이나 파는 쥐새끼와 다름없이 이 땅에서 당신과 당신의 후손과 당신의 역사를 쓸어내리고 당신들 인간의 불멸의 천재성은 얼어붙은 더러운 화산 찌꺼기처럼 이 땅의 흙과 함께 불타 없어질 것입니다. 
당신들은 미쳤고 잘못된 길을 택했습니다. 당신들은 진실 대신 거짓을 택했으며 아름다움 대신에 추한 것들을 선택했습니다. 아마 당신들은 갑자기 사과와 오렌지 나무에서 과실이 열리지 않고 개구리와 도마뱀이 열린다면 깜짝 놀랄 것이고 장미에서 땀에 흠뻑 젖은 말의 고약한 냄새가 난다면 놀랄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당신들, 천국 대신에 이 세계를 선택한 당신들에게 놀랍니다. 나는 당신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들이 생을 살아가면서 의존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나의 진정한 경멸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내가 한 때 천국의 축복처럼 여겼던 이백만 루블의 재산을 포기할 것입니다. 재산을 포기하는 방법으로 나는 계약의 규칙을 어기기 위해 정해진 마감 시간 오 분 전에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

편지를 읽고 난 은행가는 그 이상한 남자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은행가는 오두막을 빠져 나왔다. 삶의 그 어떤 순간도, 심지어 증권 거래소에서 엄청나게 손해를 보고 난 후에도 그가 이렇게 자신에 대해서 경멸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보았지만 마음이 혼란스럽고 눈물이 나와서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 당황한 감시인이 은행가에게 달려와 오두막의 그 남자가 창문으로 빠져나와 정원으로 나와서는 대문을 열고 사라졌다고 보고했다. 은행가는 즉시 하인들과 함께 오두막에 찾아가서 수감자가 달아난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 불미스런 소문이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은행가는 책상에서 포기의 뜻을 담은 그 편지를 집어 들고 집에 돌아와 그의 금고에 잘 보관하였다.


출처 :  http://nemoes.egloos.com/viewer/4497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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